지난 2월 4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항소심 무죄 판결 이후 첫 공식 행보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만나 글로벌 AI 산업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동은 미·중 간 치열한 AI 패권 경쟁 속에서 글로벌 기업 간 협력이 가속화되는 흐름을 반영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AI 패권 경쟁 속 삼성전자의 역할
이재용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올트먼 CEO, 손 회장과 만났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 주요 경영진도 함께 자리하며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은 회동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스타게이트 업데이트와 삼성그룹의 잠재적 협력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게이트’는 오픈AI를 중심으로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 일본의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민간 기업들이 협력하여 슈퍼컴퓨터와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로, 향후 AI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백악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되며 더욱 주목받았다. 미국은 첨단 기술력을 확보하고 중국의 기술 발전을 견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AI 인프라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AI 기술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미국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중국에서 개발된 생성형 AI ‘딥시크(DeepSeek)’는 오픈AI의 챗GPT보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며 AI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미국 역시 글로벌 AI 동맹을 강화하며 기술 패권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AI 반도체 강점과 협력 가능성
이러한 상황에서 손 회장과 올트먼 CEO가 이재용 회장을 직접 만난 것은 삼성전자의 프로젝트 참여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지금까지 알려진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투자액은 향후 4년간 최대 5000억 달러(약 718조 원)로,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다. 현재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지난해 20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단행한 바 있지만,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금액이 투입될 전망이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초기 투자자로는 오픈AI와 소프트뱅크 외에도 아랍에미리트(UAE) 기술 투자사 MGX가 참여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글로벌 기업들의 합류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AI 반도체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빠른 연산 속도와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를 위한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로, HBM(고대역폭 메모리) 기술뿐만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및 첨단 패키징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AI 반도체 생산의 ‘턴키(일괄)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AI 산업 내 삼성전자와의 다각적 협력 기대
이번 회동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AI 반도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AI 단말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예상된다.
실제로 오픈AI는 자체 AI 단말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손 회장과 올트먼 CEO는 기업용 생성 AI ‘크리스털 인텔리전스(Crystal Intelligence)’의 개발 및 판매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력과 하드웨어 제조 역량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올트먼 CEO는 이번 한국 방문에서 이재용 회장 외에도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신아 카카오 대표,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 등 다양한 기업인을 만나 AI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이날 출국 후 인도, 두바이, 독일 등을 순차적으로 방문하며 글로벌 AI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손 회장 역시 일본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후 곧바로 제3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라고 밝혀, 글로벌 AI 동맹 구축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재용 회장의 본격적인 경영 행보
이재용 회장은 이번 회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경영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날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곧바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출근하며 경영 복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이자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분야이다.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반도체 기업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고히 하기 위한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전망이다.
앞으로의 전망
이번 이재용-손정의-샘 올트먼 3자 회동은 AI 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AI 산업 내 글로벌 협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며,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및 하드웨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핵심 파트너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AI 인프라 구축에 대한 글로벌 투자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전략적 선택이 앞으로의 AI 시장 판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번 회동을 통해 AI 산업 내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되며, 향후 삼성전자의 추가적인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